요약 :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3배 힘들다. 그러니 맘을 단단히 먹고! 기특하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해줘라. (계속 까먹지만) 가능하면 여행은 평일로! 주말여행은 사람에 치이고 차에 치여 누리고 느끼지 못한다.
지난 일-월 1박 2일로 부모님
그리고 와이프와 아이 둘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왔다.
경주 등 부모님 동반여행은 이전에도 다녀온 적이 있지만
이번 여행이 특이하고 더 의미 있는 점은
작은 아버지의 촌집에서 하루 잔다는 것이고
아홉 살, 여섯 살 아이들과 처음으로
아이들의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참배하고
할아버지의 고향마을을 다녀온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뜻깊은가.
7인승 승합차를 사면서
(소비를 합리화하면서)
아마도 이런 순간을 꿈에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유사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예측하듯이.
이건 결코 쉬운 여행이 아니었다.
워낙에 길치인 나는 네비가 시키는 대로
둘러가든 돌아가든
시키는 대로 간다.
하지만 아버지의 고향. 나와바리. 영역에 접어든 순간
끊임없이 아버지는 네비와 논쟁을 벌인다.
나는?!
아버지 말을 따른다.
계속 아버지 말을 따르다 보니
-아버지는 운전면허도 없으신데도-
아뿔싸.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다가
교통위반을 해버렸다.... 아마 곧 과태료가 날아올 것이다.....
그리고 '고향'은
아버지의 전 생애가 소용돌이치게 만든다.
그곳에는 피붙이 동생들이 있고
동생들은 아버지의 마초 기질에 불을 지른다.
그리고 조선시대부터 끊임없이 반복되는
삼촌(대군)들과 장손 사이의 반목과 갈등이 있다.
아버지는 감히 그 해묵은 문제에 중재자로 나선다.
술은.
이 일촉즉발의 전란에 도화선이 된다...
짜잔~~
그런데 사실 이것은
나도 예상한 것이었다.
나도 한때는 매년 귀성길에 오르던
아버지의 하나뿐인 아들이 아닌가 말이다.
어릴 적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서는
아버지는 테스토스테론이 과다 분비되며 늘 어머니와 다투셨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가을볕이라곤 믿기지 않는 이상고온과
의외로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는 부모님 덕분에
일정이 계속 추가되어 내 체력이 고갈되었다는 점.
그리고
아버지와 삼촌들의 지난 수십 년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내 전 생애가 한꺼번에 들고일어나
나를 뒤흔들었다는 점이다.
내 찬란한? 과거와 품었던 꿈들
그리고 좌절. 혹은 절충 말이다.
늘 고향에는, 고향 마을에는
더 잘난 더 성공한 이들의 신화가 있고
너무나도 세속적인
그래서 이제 도시에서는 누구도 감히 꺼내 들지 않는
그런 세속적인 이야기들이
고향과 친척들에게서는
적나라하게 들먹여지는 것이다.
낯이 뜨겁도록 세속적이라, 쉽게 외면하지만
-결국은 나도 세속적이라-
그 성공신화들은 일순간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꼭 그런 잣대가 아니라도
중학생 시절 잠시 머무르면서
집안에서 가장 수재인 사촌 형에게
공부를 배웠던 기억.
그때 머물던 큰집.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
그런 공간들이 40년 세월 속에
너무도 황량한 폐허가 되어 버린 모습을 보는 것은
그지없이 우울한 것이다.
(잡담이지만, 형을 따라 차라리 형이 하던 학원을 다녔어야 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낡은 큰집에서
나는 멍하니 있었고
형의 수학 수업은 좋았지만 너무 원리 위주라
'정석'의 반도 소화하지 않은 채로
고등학교를 들어가야 했다)
안 좋았던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처음으로
불의 맛을 알았는데
도시에서는 금지된 '불장난'이
이곳에서는
요리 때마다, 그리고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용도로
권장되었고 나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불을 지폈던 것이다.
황홀하게 바라보면서!
그 기억을 떠올리며
두 딸아이에게 불 지피는 방법
숯, 나무, 신문종이의 재료로서의 특징들을
(봐봐 숯은 늦게 불이 펴지지만 오래가고
신문종이는 금세 화르르 타오르지만 금방 꺼지지.
나무는 그 중간이야~~)
신나게 설명하면서 같이 놀았던 것이다.
아마 두 딸도
그 순간을 오래, 어쩌면 영원히 기억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 여행을 즐기셨던 것 같다.
긴 여정을 끝내고 마침내 다시 집에 모셔다 드리고
헤어질 때
어머니는 분명 와이프를
안으셨던 것 같다.
다소 생소한. 허. 그.
고작 1박 2일인데 어머니도 길게 느껴지셨던 걸까?
강행군으로 일정을 추가하던 어머니도 고단 하셨던 걸까?
그래서 와이프에게 전우애가 생기신 것은 아닌지.
참.
나름대로 여행정보도 이야기해야겠다.
어제 <북천 코스모스 메밀 축제>를 다녀왔다.
사실, 어머니께서 예전에 가보니 너무너무 좋았다 하셔서
이번 여행이 기획된 것인데
늘 그렇듯이
어머니는 예전만 못하다 하셨다.
일단 너무 더웠고,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다.
팁이라면, 가는 길에 주차장이 계속 보이는데
차를 일찍 댈수록 행사장까지 많이 걸어야 했다.
북천 기차역이 보이고 나서
조금 더 가서 주차를 하는 것이 최적이다.
주차료, 행사장 입장은 모두 무료이다!!
찻길을 사이에 두고 행사장이 양 옆에 두 곳이다!!
한 곳만 보고 가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한쪽은 드넓은 평야에 꽃들이 만발하고
반대쪽은 그늘이 드리워진 하우스를 지나가는데
일단 시원해서 좋고
각종 박 들이 천장에 매달려있어 신기하고 좋았다.
레일바이크가 보여 아이들 눈길을 끌었는데
매우 고가이고, 시간도 자주 있지 않아야
타보지는 못했다.
결론적으로
무더위, 한낮, 주말이라면 비추한다.
선선한 가을 날씨, 평일이라면 들러봄직하다.
한 가지 놀란 것은
두 곳을 다 둘러보고 너무 덥고 목이 말라서
북천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편의점 하나 없고
그 흔한 벤딩머신 하나 없다!!
나름 최신식 건물인데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서울의 번화가에는 스타벅스가 수십 개가 있는데
"서울 중심주의의 심화"...라는 테마에 꽂혀있어
그런지 씁쓸하다.
암튼, 음료수 챙겨가시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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