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해변과 칵테일. 헤밍웨이. 그리고 체 게바라.....
사람들이 쿠바에 가진 이미지는 황홀하다.
(체감상 왠지 여자들이 특히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많은 방송에서 이곳을 촬영했고 심지어 드라마 촬영까지 이루어졌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까지 좋은 이미지는 아닌 것 같다.
(물~론 훌륭한데, 자메이카 브라질 베냉이 가진 강렬한 매력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아마도 첫인상이 별로라서 그런가?
공항에서 나오는 데 카메라 감독의 드론이 잡힌 것이다.
코디는 해결하러 들어갔고
먼저 나온 나는 혼자 꽤 오랜 시간을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문득 시간을 절약하고자 제작비를 환전했는데
여기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나는 유로와 달러를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멍청하게도 달러를 쿠바 화폐로 환전한 것이다.
이것이 왜 멍청한 짓 인고하니
유로를 환전하는 것과 달러를 환전하는 게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나... 속이 쓰릴만큼 손해가 컸다.
반드시 챙겨야 할 꿀팁이다!! 쿠바에서 환전은 반드시 유로로 할 것!
가이드북에서 읽었기에
명백히 내 실수인데도
나는 뭐 이런 나라가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암튼 쿠바는... 술 먹고 음악 듣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뭐 그런 느낌이랄까. 음식이 맛없는 게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이 글은 며칠에 나눠 썼는데,
마지막 날, 또 쿠바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났다.
관광비자가 아니라 촬영 비자가 필요했는데 한국과는 수교가 되어 있지 않아
일본으로 직접 가야 한다는 것이다.
코디에게 몇 번이나 확인했다.
정말, 오로지 비자를 받으러, 직접, 일본까지 가야 한다고요?? (헐..)
코디는 모든 행정절차를 다 밟아놓을 테니 가서 싸인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입이 잔뜩 튀어나와 어렵게 찾아간 일본 쿠바 대사관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금시초문이라는 것이다.
뭐 결론은 어쨌든 받아왔지만
살면서 가장 당황하고 화나는 경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일 뿐
<설탕의 제국>의 작가님은 쿠바를 사랑하셨다 ㅎㅎ
그래서 <설탕의 제국>의 포문을 여는
첫 아이템을 쿠바로 시작했다.
1. 사탕수수만 재배했던 '모노 컬처'의 나라, 쿠바
다큐에서 쿠바 부분이 차지하는 맥락은 이렇다.
서구 열강은 설탕이 가진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알게 된 후
사탕수수를 기르기에 가장 최적인 장소를 찾아냈는데
바로 카리브해 지역이었다. (쿠바 바베이도스 자메이카 등등)
그래서 이곳 섬들에 사탕수수를 심기 시작했는데
"모노 컬처"라고 불릴 만큼 무자비하게
즉, 오로지 사탕수수만을 경작하게 했다.
그로 인한 상흔(부작용)은 매우 컸고
지금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잠시 기획안을 살펴보자~
<사탕수수의 저주 : 쿠바 사례>
이러한 설탕의 비극은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다.
과거 모노 컬처를 경험했던 국가들은 하나같이 후진국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쿠바의 설탕을 독점 생산하는 국영 기업 아스쿠바(Azcuba) 방문
#쿠바 플랜테이션 농장, 설탕 산업부 관리, 아바나 대학 꼬르도비 교수 인터뷰
현재 쿠바의 주요 수출품은 설탕. 16세기에 스페인이 전해준 설탕으로 지금까지도 먹고사는 쿠바. 고마워해야 하는 것일까? 설탕의 족쇄에 갇혀, 설탕 재배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사탕수수의 저주이다.
-스페인에 의해 사탕수수 최초 보급(16세기)
1547년에 스페인은 쿠바에 사탕수수를 보급했다. 그 후 사탕수수가 카리브해의 상징처럼 됨. 마치 원산지로 여겨질 정도로 확산되었다..
- 쿠바 설탕의 전성기(20세기)
쿠바의 설탕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1960년 쿠바 혁명으로 미국이 쿠바 설탕 수입을 금지함으로 위기를 맞았으나 소련이 쿠바 설탕을 안정적으로 수입해줬다. 쿠바는 혁명 이후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 4040여 년간 설탕 수출을제1의 외화 수입원으로 삼았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는 연간 설탕 생산량이 600만~800600만~800만 톤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설탕 생산국이기도 했다. 설탕 관련 산업만을 전담하는 정부부처인 '설탕산업부''설탕 산업부'가 별도로 있을 정도였다.
- 소련 몰락 이후 위기 –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소련 등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주요 설탕 구매국을 잃었다. 설탕이 위기를 맞자 나라 전체가 휘청거렸다. 설탕에만 매달린 모노 컬처의 분명한 폐해인 것이다. 소련이 무너진 이후 즉, 89년부터 93년 기간 동안경제성장이 35%나 뒷걸음친 것이다.
- 쿠바 사탕수수의 저주
모노 컬처의 폐해를 절감한 쿠바는 다른 산업을 육성하려 했으나 여의치가 않다. 지금도 설탕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산업이 없다.(외화 소득원.(외화소득원 1위는 관광, 2위는 망명 쿠바인들의 송금. 사탕수수 수출로 인한 외화 소득은3위)
호세 마리아 메사 로페스 농업박사/ 사탕수수 기술연구소 사탕수수 기술연구소
"한때는 쿠바가 세계적으로 제일 중요한 설탕 생산지였습니다
사실이에요, 경제적으로 설탕의 역할은 아주 중요했죠
1960~70년, 80년대까지도 그랬죠, 거의 매년 700만 톤의 설탕이 생산되었어요
당시 쿠바에는 설탕 제조 기술자들의 말이 있었어요
설탕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그만큼 설탕 생산이 경제에 큰 역할을 했다는 뜻이에요"
이런 어려운? 심각한? 내용을 전달하기 전에
흥미롭고 재밌는 내용들도 소개해야 한다.
2. 쿠바의 술 : 럼 (모히또와 다이키리)
-쿠바인이 즐겨먹는 음료수 <과라뽀>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고 얼음만 넣어 먹는 사탕수수 즙.
사탕수수 밭에서 잘라온 사탕수수를 바로 으깨서 즙을 낸다.
감미료에 길들여진 내 입에 '맛있다'라고 느껴지진 않으나
그렇다고 맛이 없지도 않았다!
# 최고의 럼주 : 쿠바의 아바나클럽아바나 클럽(Havana Club)
카리브해에는 왜 해적이 유명할까?
해적은 왜 럼주를 마실까?
정답은 모두 설탕 때문이다!
앞선 말한 것처럼 서구 열강은 카리브 식민지에
사탕수수를 재배했는데
설탕은 당시 최고의 상품이었기 때문에
이를 노린 해적들이 창궐한 것이다.
그리고 사탕수수가 흔하다 보니 이것으로 만든 술이 럼주인 것이고.....
사탕수수 즙을 여러 번 졸여서 결정을 추출하는데
결정이 되지 못한 찌꺼기가 바로 럼주의 원료인 당밀이다.
해적들의 근거지가 사탕수수 산지인 카리브 해인만큼 사탕수수로 만든 럼주가 해적들의 술이 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늘날 최고의 럼주로 평가되는 쿠바의 코루바(Coruba)와 아바나 클럽(Havana Club) 등 럼의 명품들이 카리브해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 중 아바나 클럽을 방문하였는데
럼주의 역사, 그리고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일종의 체험관이었다.
그런데 보통 박물관, 체험관은 방송적으로는 재미가 없다!
아무래도 정적이라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바나 클럽은 지금까지 가 본 체험관 중에서 최고였다!!
실제 공장이라고 여겨질 만큼 시설이 훌륭했었고
유명한 디오라마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던데
과연 1930년대 설탕 공장을 작게 축소해서 만든 디오라마는 감탄이 나왔다.
(그래서 열심히 찍었고 모두 방송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만드는 과정, 역사를 알았다면 이제 마셔봐야 하지 않겠는가!!
럼주를 기반으로 만든 칵테일인 모히또와 다이키리.
가장 유명한 곳을 각각 방문하였다.
“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
(내 모히또는 라 보데기따, 내 다이끼리는 엘 플로리디따).”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남긴 문장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써놨는데
조금만 더 검색해보니 헤밍웨이가 진짜 그렇게 말했는지 불명확하다고 한다.
어쨌든 모히또는 라 보데기따 라는 곳이 가장 유명하고
다이끼리는 엘 프롤리디따 라는 곳이 가장 유명하다.
(결국 쿠바의 모든 관광객들은 두 곳 다 들르게 된다)
아래는 그중 하나인 라 보데기따~
해가 쨍쨍한 한낮인데 다들 낮술이 한창이다.
문제는 정말 유명한 이곳들은 촬영이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뷰티 컷을 위해서는
조명도 쳐야 하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득이 대중 술집인 <클럽 아바나>에서 맘 편하게 찍었다.
심혈을 기울인 만큼, 마치 땀방울처럼 송골송골 맺힌 잔의 물방울들
그리고 녹색잎이 상큼하게 잘 나왔다.
맛은 어땠는가?!
사람마다 모히또를 좋아하는 이와 다이키리를 좋아하는 이로 나뉜다던데
나는 단연 다이키리 파가 되었다.
(사실 맛을 묘사할 만큼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분명히 기억하는 건
이후 다른 곳에서 다이키리를 먹어보았는데
너무도 실망스러울 만큼 쿠바의 다이키리는 맛이 좋았다.
3. '모노 컬처’에 저항하는 쿠바의 도시농업
모노 컬처의 폐해를 겪은 쿠바.
하지만
다큐에서는 쿠바에서 어떤 희망을 엿보고자 했다.
모노 컬처로 인해 설탕에만 목을 매다가, 설탕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국가경제가 휘청일 지경이 되었는데
이후 모노 컬처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특히 "유기농" "생태농업" 분야에서는 쿠바가 선진사례로 소개될 정도라고 한다.
# 쿠바의 생협 방문
# 도시농업 현장
모노 컬처란,부에서 본 것처럼 오로지 사탕수수 단일 작물만을 재배하는 기형적 재배형태이다.
쿠바 역시 대표적인 설탕 제조국으로서 모노 컬처의 폐해를 앓아왔다. 그러나 다른 움직임이 펼쳐지고 있다.
바로 <도시 농업>이다. 도시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
현재의 세계 무역체제를 정반대로 거스르는 이 꿈이 실현 가능할까??
그 가능성을 부분적으로나마 증명해 보이고 있다. (1992년 식량자급률45%. 2002년 식량자급율 95%)
근대 산업사회에서 도시는 농업을 죽이는 정반대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쿠바의 도시농업을 진행하는 UBPC(기초단위협동조합)UBPC(기초단위 협동조합)에서 가장 주력하는 것은 다양한 작물의 생산.
즉 모노 컬처와 정반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어렵게 섭외해서 가 본 농장은
참으로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물론 쿠바의 촬영은 쿠바 국영방송의 협조 혹은 감시 감독? 아래에서 이뤄졌는데
그곳에서 소개해 준 농장이라 소위 '방송용'일 수는 있겠다.
어쨌든
이제는 모노 컬처가 아니라 다양한 작물을 한 번에 재배하고 있었고
모두 깨끗하고 신선한 유기농으로 길러져서
인근의 산지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방송에서 길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농장의 운영 역시 아주 민주적으로,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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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레이나또 에스피노사 꼬야스
"사회주의 진영 붕괴는 저희에게 큰 영향이 있었어요
소련이 무너지고 붕괴는 저희에게 영향이 컸어요. 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일 같아요
하지만 저희 쿠바 사람들은 정부와 저희들을 이끌어준 역사 속의 영웅들 덕분에
“단일 농법에서 다양화”로 바뀔 수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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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유기농 농장 주인
"사탕수수의 경우 20년 동안 한 가지 작물로만 기르고 자르고 또 기르고 자르고... (지력이
쇠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저희는 채소를 ‘윤작’의 방식으로 재배해서 지력을 향상하고
있습니다. ‘윤작’이란 1년에 같은 밭에서 3~5개의 작물을 재배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땅에
영양소를 공급하고 질병을 예방합니다. 일반적으로 쿠바 작물의 70%가 유기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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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쿠바의 춤과 종교 : 아프리카의 흔적을 만나다
쿠바는 물론이고, 카리브해 연안의 사람들 대부분이
아프리카인이다라고 하면 바로 이해가 되는가?
지도에서 쿠바, 그리고 아프리카를 짚어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쿠바와 아프리카 사이에는 거대한 바다 - 대서양 - 가 중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도 '설탕'에 있다!
서구 열강은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한 땅을 카리브해에서 찾았고
이제는 사탕수수를 재배할 노동력을 찾아야 했다.
설탕을 만드는 과정은 그 당시로서는
매우 노동집약적 산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근대 공장의 출현을 '설탕공장'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운반하고, 즙을 내고, 끓이는
이 과정들이 매우 체계적이고 분업화되며 빠른 시간 안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매우 힘든 중노동"이라는 것인데
이 일을 시키기 위해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카리브해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이 사실을 '비약'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있었는데
이건 조금만 검색하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뿌리"라는 미국 드라마가 대히트를 쳐서
"아프리카 노예" 하면 면화를 연상하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설탕이라는 달콤하고 새하얗고 순수한 물질 이면에
검은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
이건 정말 대단한 대비이다.
나는 이 대비가 참으로 강렬했고,
바로 그 이미지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셈이다.
각설하고 (나중에 아프리카 부분에서 더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쿠바에서 아프리카의 문화의 흔적을 만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나는 그런 쿠바-아프리카 문화의 접점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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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타타 구이네스 주니어 (공연팀 리더)
"(우리는) 아프리카의 노래들, 아프리카 언어로 된, 우리들, 우리들의 조상들,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불렀던 그 노래들을 공연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아프리카의 정통 언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쿠바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관광 오면,, 매우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 언어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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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종교박물관
아프리카 노예들이 쿠바에 도착했을 때, 스페인 사람들은 그들에게 가톨릭 교회의 세례를 강요했습니다. 아프리카 신들에게 예배드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종교가 그들에게는 매우 소중했기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에게 예배드리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페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면서 다른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혼합주의(싱크레티즘)입니다. 혼합주의는 가톨릭과 아프리카 종교의 혼합을 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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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부두교와 가톨릭이 유사하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각종 게임 영화 등을 통해 흑마술 혹은 위험한 주술의 이미지가 덕지덕지 붙은 '부두교'가 어떻게..... (라고 생각하시겠지)
(실제 서아프리카 베냉에서는 온갖 동물들의 기괴한 가죽, 뼈 등 부두교 제물들을 팔고 있긴 했다.)
노예 주인들은 너무도 당연히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모여서 아프리카의 종교행사를 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예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싫었을 것 같긴 하다)
오지랖 넓은 주인들은 더 나아가 그들의 종교-가톨릭-를 강요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리카 흑인들의 대응전략은
가톨릭 행사를 하는 척하면서, 사실을 그들의 종교행사를 하는 것이다.
매우 거칠게 말하자면 (나는 종교학자가 아니므로)
바로 이 이중화된 종교, 겉과 속이 다른 종교, 가톨릭 미사의 외양에 아프리카 종교의 요소를 혼합한 것이 부두교이며
그 전략을 싱크레티즘(혼합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잠시 기획안을 인용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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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교란 넓은 뜻으로는 서인도제도와 미국의 흑인들 사이에 행해지는 주물(呪物) 숭배(呪物)숭배 ·주술(呪術) 등을 포함하는 관습을 말한다. 쿠바의 산테리아교(Santeria), 브라질의 마쿰바 교(Macumba)와(Macumba) 유사하다.
부두교는 주술이나 악마 숭배 등 미신적인 종교로 오해받고 있다. 그러나 부두교는 그 시작부터 노예제 등 서구의 지배문화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노예가 된 이들은 극도의 두려움 속에 수호정령을 찾는 슬픈 노래를 불렀다.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종교는 가톨릭이었기에 가톨릭 의식 속에 부두교 의식을 교묘하게 숨겼다. 가톨릭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하면서 부두교의 의식을 치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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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 싱크레티즘 전략과 종교는 쿠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어지는 여정에서 브라질에서도 볼 수 있었다.
앞에서 쿠바에 대해 투덜거렸지만, 사진들을 보니 감탄할만하다.
쿠바 관광객들이 로맨틱하다고 극찬하는 말레콘 해변 방파제이다.
비 온 뒤라서 그런지 이 해변에는 모기가 많았다. 다들 몇 방씩 물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좀 무리해서라도 다른 도시도 가 볼 걸 그랬다.
일정이 빠듯해서 일주일 내내 거의 수도인 아바나에 머물렀다.
또 다른 고생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설탕으로 유명한 나라이니 '설탕'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모습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거의 반나절을 헤매었는데 도무지 설탕을 찍을 수가 없었다.
쿠바 사람들만 다니는 시장에 가봐도 아주 쪼금 (그림으로서 가치가 없다) 있을 뿐.
아마도 "배급제" 사회라서 그런 게 아닐지.
호텔방에서도 와이파이가 안 되는 몇 안 되는 나라.
내가 나고 자란 자본주의 사회와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나라.
(어쨌든 사회주의이니까 말이다)
다시 공항에서 출국할 때
놀랍게도 빼앗긴 드론을 돌려줬다.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보관료는 뜯어갔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글을 다 쓰고 보니
다이키리 생각이 간절하다.
ps
참고로 촬영 일정표를 공개합니다.
인천공항에서만 해도 거의 24시간이 걸렸네요.
하루 전에 부산에서 출발한 걸 생각하면.... 도무지 몇 시간 만에 도착한 것인지.
다시 가기 끔찍하군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마탄사스는 안 간 것 같습니다.
다음의 여정은 브라질 상파울루였네요
대한해협 (1부 한의바다 / 2부 욕망의 바다) (0) | 2021.0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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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의 제국 (0) | 2021.0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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